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월 항쟁 (문단 편집) ====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 ==== [youtube(ARMmE-VT8-o)] 2017년 6월 8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이부영]], 한재동 그런 와중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김승훈(1939)|김승훈]] 마티아 [[신부(종교)|신부]]가 [[5.18 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은폐'''되었고 고문경찰은 모두 5명이었다는 것을 폭로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상승했다. 이 발표된 과정이 매우 극적이었다.[* 교도소의 이부영에게서 사건 진상을 전달 받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으로 하여금 폭로하는 데 중간 다리 역할을 했던 김정남 전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은 <이 사람을 보라 - 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우연 같은 사건의 연속으로 진상의 폭로가 가능했다고 적고 있다.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본시오 빌라도]]가 잡혀온 [[예수]]를 보고 한 말이다.] 당시 고문치사 사건 주범들은 사건 축소, 은폐로 자신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쓴 것에 대해 억울해하며 감방에서 소리를 질러댔다. 이것을 우연히 근처 방에 수감 중이던 재야민주화운동가 [[이부영]][* 나중에 서울 [[강동구 갑]]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낸다.]이 듣게 되어 교도관에게 문의했더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박종철 사건]]이 은폐조작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흘러나온 것.[* 당시 교도관-경교대를 위시한 교도소의 폭력적인 통제 분위기 속에서 교도관의 이런 모습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당시 교도관 중에는 심정적으로 민주화 운동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음으로 양으로 수감된 민주화운동가들의 편의를 봐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저 교도관의 경우는 이부영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까지 써가며 예의를 갖췄다고.] 이부영은 이에 크게 분노하여 관련 내용을 '''휴지에 써서''' 다른 교도관을 통해서 외부에 내보냈고, 이를 받은 김정남 전 수석이 [[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하여 발표하게 된 것이다.[* 이 교도관들의 신원은 혹시 모를 불이익 때문에 비밀에 부쳐지다가 모두 정년퇴직한 2012년에 처음 공개되었다. 처음 이부영에게 사건의 전말을 귀뜸한 사람은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이었던 안유였으며, 문서를 외부로 운반한 사람은 교도관 한재동이었다. 이 두 사람은 2012년 박종철 25주기 추모식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부영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한재동 교도관이 이부영이 적은 메모를 전 교도관 전병용을 만나 전달했고, 전병용이 다시 이를 김정남 전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아찔했던 건, 당시 전병용은 이부영과 장기표를 숨겨준 일 때문에 수배를 받고 쫓기던 중에 이 일을 하게 되었는데, 김정남에게 이를 전달하고 이틀 후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만약 전병용이 이를 전달하기 전에 체포되었다면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사건이 축소 조작되었음이 새롭게 밝혀지자 경찰과 정부의 도덕성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여론은 폭발했고, 야당과 재야운동권은 고문 살인 은폐 조작을 규탄하는 대규모 대회를 열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5월 22일]] 폭로 기사를 1면 타이틀로 올린 이후 지속적으로 박종철 고문 치사 은폐와 그에 다른 수사, 인책 등에 대한 기사가 1면으로 올라왔으며 5월 말까지 지속됐다.] [[5월 27일]] [[향린교회]]에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가 결성되어 그간 분열되어 있던 민주 세력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국본은 [[6월 10일]] [[민주정의당|민정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 [[전당대회]] 날에 맞춰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를 규탄하는 집회를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도시에서 열기로 했다. 또한 각 대학에서도 시위의 열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5월 말, 학생들이 뭉쳐 종로로 나왔다. 이날 시위에는 이전과 달리 일반 학생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그뿐만 아니라 종로에서 학생들이 단체로 드러누워 집회를 하다 경찰이 체포하려 하자 시민들이 항의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6월 초, 국본은 서울시내에 약 20만 장의 전단을 뿌려 집회 사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각 대학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